
뾰족뾰족 성인. 왠지 모를 수상한 외계인. 평범한 지구인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그리 평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하여튼── 알고 보니 저 머나먼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던 사람. 그렇지만 우리들한텐 분명 상냥했던 그 사람. 아마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물론 그것으로 전부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대괴수 로봇 부대 파일럿, 스트레이지의 헤비쿠라 쇼타 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신분을 위조하여 여기에 왔는지 그의 진의를 파악할 길은 없다. 하루키에게 뭔가 얼핏 들었던 것도 같은 기분이 들지만 굳이 상관하지 않았다. 한번 신경 쓰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니까 그건 사양이다. 그러나 딱 한가지, 원하는 것이 있었다. 정말 어떻게 해서도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은 물건이..
"대장님, 오랜만이예요! 하루키도-"
"하루키! 대장님!"
"어, 그렇네~ 오랜만에 본다. 유카- 잘 지냈냐?"
"네~ 요코도 바코 씨도 그대로인 걸요. 참, 요즘 카부라기 군과 같이 공동 작업하는 일이 많아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요!"
"그러냐~ 또 그 뭐, 이상한 발명품 무언가.."
"그래서, 그래서 전 역시 대장님의 샘플을 원한다구요!!"
"내가 수상한 외계인은 맞다만 유카 너어.. 설마 내가 언젠가 돌아오길 아주 손꼽아 기다렸구만?"
"데헷-"
울트라맨 제트가 되어 우주로 나갔던 나츠카와 하루키도 때마침 오늘은 기나긴 여정을 뒤로 한 채 잠시동안 스트레이지에 돌아와 있었고 나카시마 요코와 정비반의 이나바 코지로, 통칭 바코 씨도 늘 보던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스트레이지 사무실 내의 분위기는 헤비쿠라가 처음 저글러스 저글러라는 자신의 본 신분을 숨기고 들어와 지내온 나날처럼 밝고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아, 확실히 당시의 날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득 찼다. 만약 쿠레나이 가이 녀석이 본다면 네가 이럴 줄 몰랐다며 완전히 나에게 코웃음을 치고 웃을 일일 테다. 분명 그럴 거라고 그와 대화 내용을 상상 하면 솔직하게 말해서 조금 짜증나긴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래,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도 꽤나 웃긴 상황이었으니까──
현재 스트레이지에는 따로 대장이 없다고 한다. 유카와 요코에게 전해 듣기론 쿠라야마 장관이 헤비쿠라를 대신할 새로운 대장을 뽑는 것이 어떠냐고 의견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그 의견은 여러 스트레이지 대원들에 의하여 기각되었다고 하였다. 우리들의 대장은 스트레이지에 대장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오직 단 한명 뿐인 헤비쿠라 대장님 밖에 없다고 전원이 새로운 대장은 안 된다며 빗발치는 요구 때문이었다고 했다.
어차피 외계인이라는 걸 정체도 들켰으니 더 이상 이 지구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도 없었기에 저글러는 원래 자신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그래도 스트레이지의 전 대장으로서의 나쁘지 않은 감정을 안고서─ '다들 날 너무 좋아하는군' 스트레이지의 대원들을 바라보며 익숙하게 자신의 전용 책상이 있는 자리의 의자에 앉으면서 저글러가 낮게 중얼거렸다.
왠지 많이 휑한 기분이었다. 애초부터 기타 많은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놓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필요한 것들만 몇몇 책상 위에 있던 터였다. 그 마저도 저글러는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하는 편이라 유일하게 책상 위에서 거의 애지중지하다시피 한 초록빛 분재도 지구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들고 간 물건이다. 지금 있을 리가 없지. 손을 위에 얹어 쓸쓸히 책상을 한번 스윽 쓸었다. 차갑고 딱딱하면서도 표면은 부드러운 재질감의 촉감이 느껴져왔다.
"대장님- 이렇게 왔는데 오늘 여기서 머무르고 가시는 거죠? 저도 기숙사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은 다시 제트 씨와 함께 우주로 나갈 생각이거든요."
"뭐, 정 원하면 나도 오늘은 여기서 있다가 갈까"
"정말인가요?"
저글러의 말에 답을 받아 정말이냐고 반문한 것은 하루키가 아니라 유카였다. 유카는 어쩐지 들떠서 방방 날뛰고 있는 중이다. 그냥 단순힌 자신들의 대장이 돌아와서 기쁜 것이라고 보기엔 좀 더, 좀 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저글러는 대충 유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으레 짐작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한쪽 팔은 팔짱 낀 채 턱을 한번 쓸었을 뿐이다.
"어이, 유카- 또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상한 쥬스나 만들어서 우리더러 먹으라는 건 아니겠지?"
"너무해~ 요코- 그렇지만 오늘 밤은 왠지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
"특별한 날이라면 특별한 날이지~ 이런 기회 절대 흔치 않다구?!"
"에, 그런가요.."
"연구에 도움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아주 미친듯이 해부해주겠어!"
하루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는 유카의 공공연하게 은근슬쩍 툭 튀어나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취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저런 매니악한 취미도 즐기는구나 싶었다. 유카가 연구에 미친 과학자는 아니지만 사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름 일종의 비즈니스 모드의 스트레스 해소법 비슷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과학자 특유의 호기심을 포기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아무튼 여러가지 이유를 대려면 수없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저 두가지라는 것이 다소 큰 비중을 차지한달까, 그저 그 뿐이다.
이들에게 있어 전 대장인 헤비쿠라가 돌아오자 자연스레 그를 중심이 되어 쏙쏙 모여들었다. 비록 스트레이지의 대원복이 아니어도 까만 정장 안의 붉그스름한 노을빛을 품은 와인빛이 도는 진한 붉은 와이셔츠에다 제 상징과도 같은 뱀 디자인의 이어커프를 낀 저글러에서 어느 새 헤비쿠라 특유의 성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부분이 마치 내 안의 또 다른 인격이 있는 이중인격처럼 헤비쿠라라는 캐릭터를 잘도 능글맞게 씨익 미소 지으면서 즐겼다. 이젠 목적을 위한 연기라기보단 지금에야 이르러선 아예 그걸 즐기는 느낌으로 변했다.
스트레이지의 전 대장이 돌아오고 그날 하루는 헤비쿠라의 지휘 아래 피에로의 저글링처럼 일상이 굴러갔다. 뒷짐을 진 채 괴수의 습격으로 허둥지둥 바삐 움직이는 대원들과 부대끼면서 저글러는 무환마인으로 변신하여 간간히 그들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문제는 어둠의 힘을 잃어버려 마인체가 더 이상 울트라맨 만큼 거대화해지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 조금, 아주 조금 정말 유감스러울 따름이지만 예전의 본인이 그랬듯 이제 빛에 선택받지 못했다는 변명을 댄 채 어둠의 힘 따위 집착하는 마음은 버렸다. 그랬더니 가슴 속이 꽤 후련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저글러는 모두 스트레이지 내 기숙사로 자러 들어갔을 때 혼자 사무실 안에 남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은 조용하고 적막감이 가득 흘렀다. 본모습인 채 그는 푸른빛을 띈 투명한 병을 손에 들었다. 가이가 자주 즐겨 마시던 라무네다. 구슬을 뽁 밀어넣어 뚜껑을 연 그가 라무네를 한모금 벌컥 마셨다. 목 안으로 들어가는 탄산수에서 금방 탄산이 보글보글 올라와 톡 쏘아대는 소다 맛이 싱그러웠다.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 무환마인으로 변신하였다. 딱히 아무 이유 따윈 없었다. 마인체 모습이 된 저글러가 라무네를 책상 위에 천천히 내려놓은 뒤 사심검을 소환했다. 사심검의 칼날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잔잔한 일상의 분위기에 감상을 젖어가던 즈음이었다.
"유카, 지금 뭐하는 거야?"
"쉬잇! 요코, 하루키, 조용히 해~ 이럴 때 딱 한번 오는 찬스라고- 절대 놓칠 수 없어"
"그러니까 무엇을?"
"대체 뭘 찾고 있는거죠?"
"당연하잖아~ 대장님의 샘플-!!"
목소리를 한껏 낮춰 조곤조곤 말하는 유카의 이야기를 듣다가 하루키와 요코는 놀라 에엑? 하고 큰소리로 내지를 뻔 한 걸 겨우 참았다.
"대장님은 외계인이니까 무심코 또 호기심이 발동한단 말이지~ 파츠 조각 일부분을 떼어내 연구할 거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샘플을 채취하겠어!! 히힛-"
"본격 뾰족뾰족 성인의 전격 해부라는 건가요."
"근데 대장님 감 엄청 좋으시거든~ 가능해?"
"혹시 들키면 어떡하죠?"
"걱정 마~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두 사람도 나 좀 도와줘"
유카가 검지 손가락을 척, 올리며 치켜들었다. 심지어 콧노래까지 불러댔다. 그 모습을 응시하던 하루키와 요코는 서로 바라본 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간단하게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유카가 혼자 몰래하기엔 무리라면서 둘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함께 「외계인 헤비쿠라 대장님의 파츠 샘플을 Get 하라!」란 작전에 아주 보기 좋은 기세로 멋지게 휘말려버리고 말았다. 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요코 - 하루키 - 유카]가 되었다. 그리고 저 책상 앞에는 여전히 저글러가 변신한 상태의 무환마인이 된 모습이었다. 괜히 보는 이 마저 삼각형의 꼭짓점과 같이 뾰족뾰족한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슈트였다.
제일 첫번째 순서인 요코는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다가와 대장님의 바로 앞까지 섰다. 뾰족뾰족 성인은 예의 뒷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틈이 있으면 항상 먼저 파고들어라는 말을 일러준 우리 대장님의 말씀을 지금 이 상황에서 실행할 때다. 요코가 두어 번 발걸음을 떼어 한걸음 앞을 향해 내딛으려는데 저글러가 휙 뒤돌아 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나..' 고개를 갸우뚱 젖히면서 혼잣말을 내뱉은 그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휴우- 요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 다시 작전이 이어졌다. 요코가 한번 더 이어서 하려다가 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별 소득없이 끝났다.
이번에는 다음 두번째 순서인 하루키 차례가 되었다. 조심스레 다가기도 전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저글러가 휙 고개를 젖혔다. 재빨리 아무 곳을 찾아 몸을 숨긴 하루키가 긴장한 나머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까지도 무환마인체로 변신한 상태였던 저글러는 의심의 눈초리를 한 채 사심검을 휘릭 돌려 온갖 기교를 부렸다.
"아, 분명 누가 날 지켜보는 것 같단 말이지"
아까와 다른 공기의 흐름에 조금 미묘한 느낌이었지만 무환마인 저글러스 저글러는 이내 시선을 거둬들었다. 그 사이 하루키에게서 눈치 보여 정말 못하겠다며 마지막 바통을 넘겨받은 유카 본인이 드디어 헤비쿠라 대장의 샘플을 얻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아아! 감격스럽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기쁨의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한다. 오늘만을 위해서 대체 언제 대장님이 스트레이지에 귀환해주실까 몇 달 간의 오랜 기다림 끝에서 이제 계속 원하고 바래온 샘플을 내 손에 가질 수 있는 순간인데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속으로 수천 번도 넘게 쾌재를 부른 유카가 휴대폰 이모티콘의 얼굴 중 *\>_</* (좋아 좋아) 표정을 지으면서 날뛸 듯이 팔을 빠르게 빙빙 돌려댔다. 하루키는 제트라이저를 통해 울트라맨 제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요코는 유카한테 그러다가 진짜 걸리면 난 책임지지 않겠어, 라는 말을 꺼내자 곧 행동을 삼갔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작전 수행에 들어갔다.
최근 새롭게 자신이 특별히 개발한 신작품인 괴수 파츠 조각 샘플을 회수하기 위해 만든 스트레이지 전용 총을 들고 파츠를 얻을 생각 만만이다. 심지어 별 다른 요란한 소리조차 나지 않아 상대가 정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느끼지 못한다. 덕분에 대장님이 눈치챌 거라는 생각은 저 멀리 고이 접어둔 채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이동할 때 아슬아슬하게 2번 들킬 뻔 하긴 했다. 자꾸 제쪽을 향해 돌아보는 통에 오히려 몸을 숨기기 바빴다. 3번째 도전할 쯤에는 또 다시 들킬 뻔 해서 유카는 옆 책상 밑에 숨어 그가 제 할 일 하길 기다렸다가 이윽고 바닥을 기어나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역시 외계인의 샘플을 얻기란 영 쉽지 않다니까.. 유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이, 이봐~ 유카, 여기서 뭐하냐?"
"에에? 대장님!"
"훗- 너네 진짜 웃긴다. 야~ 다 들켰어~ 그만 작당모의 하고 나와라"
"대장님 알고 계셨어요?"
"정말이지, 촉 하나는 끝내주게 좋으셔-"
"그러게~ 항상 틀린 예감은 없었어"
어두운 공간 안은 조금 전의 고요함은 어디 가고 밤이 짙게 깔린 암흑 속에서 무환마인의 붉은 눈빛이 반짝 빛났다. 하루키는 그 마인으로 변신한 대장이 살짝 무섭기도 하면서 동시에 상냥함을 느꼈다.
"당연하지~ 물론 처음엔 아니었다만 중간부터 우당탕탕 하는 소리에, 그리 시끄럽게 난리 치고 있는데 내가 모를 리 있겠냐? 일부러 모른 척 해줬다."
"치.. 대장님 샘플! 샘프르으을-!!"
"아니 넌 왜 자꾸 내 샘플을 원하는 건데?!"
"그거야 대장님은 외계인이니까요! 스트레이지의 연구원으로써 관심이 가는 법이라구요.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까, 어떤 기능이 있을까 이것저것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직접 파츠 조각을 연구하다 보면 뭔가 흥미로운 걸 발견할 지도 모르죠! 그리고 제 전용 괴수 샘플 보관용 냉장고에 꼭 장식해둘 거예요!!"
"아, 그래 그래~ 열심히 연구해라"
"대장님의 샘플이 엄청 갖고 싶어요!!"
"정말로 갖고 싶냐?"
"네!"
"훗, 지금은 말고 나중에 언젠가 해줄께~ 하는 거 봐서-"
"저도 대장님 따라 우주로 가면 안 되요?"
"안 돼~ 절대 안 돼!"
"너무해요!"
저글러는 이제서야 무환마인의 변신을 풀고 본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시끌벅적한 스트레이지의 일상은 아직 끝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요코가 전등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자, 밝은 불빛이 창살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들어온 희미한 달빛과 섞여 주변이 환하게 비쳐졌다. 저글러는 헤비쿠라로서 미니 냉장고에다 커다란 컵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이란 말을 하니 자연스럽게 하루키도 요코도 유카도 각자 티스푼을 하나씩 잡고 자신의 의자를 가져와 헤비쿠라의 책상에다가 둘러 앉았다. 저글러는 아직 이대로도 좀 더 괜찮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이지의 모두는 전부 상냥하고 멋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 속에 내가 녹아든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을까.. 잘 모른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있잖아, 가이-
이제 겨우 내 행복을 찾은 것 같아~ 나답게..
그러니까 나도 나도 우리들, 모두 행복해지자고──
